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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할머니.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내뿜는 배기가스처럼 떠다녔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비를 피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실내에서 비 내리는 하늘은 아름답지만, 막상 밖에 나와 비를 맞게되면 아름다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찝찝함만 남는다. 카페로 가는 길에 구부정한 모습을 한 할머니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가벼워보이는 검정로퍼에 나풀거리는 검정바지에 검정 티셔츠, 근사한 에스닉 패턴의 빨간색 조끼를 입고 연보랏빛 수레를 끌고 있었다. 몽몽하게 흐린 하늘에 대비되는 색감이 내 시선을 기어이 빼앗고 말았고, 다가가려던 찰나에 그녀는 말을 걸었다.  


“학생, 고물상이 어딘지 아는감?” “고물상이요? 수레 주세요. 제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어요. 가까워요. 제가 끌어드릴게요.” 할머니는 수레를 자기 쪽으로 바짝 가까이 한 뒤 경계하듯 말을 이었다. “이건 내가 끌 수 있어. 학생이 앞장서면 내가 뒤따라갈라요.” 호의가 그녀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걸음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빠른 보폭으로 건물에 바짝붙어 걸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빗방울 속에서도 눈을 내 발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그녀의 보행자세로는 앞은 커녕 앞에 내 발밖에 못볼게 뻔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느린걸음을 봤다.  


그때 알았다. 왜 수레를 내게 맡기지 않았는지. 불안하고 느린 걸음이지만 그렇게나마 보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수레 때문이였다. 수레가 그녀의 또 하나의 다리였다. 수레로 몸의 중심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수레가 없었으면 몇 걸음도 못가 털썩 주저 앉았을 것이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레를 끌어드리는 게 전부였는데 그 것마저 못했고, 길잡이 밖에 못했다. 난 못 본체하고 다시 발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서서히. 내가 느리게 걷는 건 결코 배려가 아니다. 그녀가 내 느린걸음을 부추겼던 건 절대 아니다. 


첫째로는 내 다리가 불편해서였다. 올해 골반 골절로 하지로 내려가는 좌골신경에 손상이 왔다. 왼쪽 발가락은 위로 잘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 발가락은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신경손상이 발에 변형을 일으켰다. 걷는데 지장은 없다. 전처럼 축구는 못할 것도 알고있다. 손실이다. 축구는 나를 잃었다. 슬플 것이다. 쉽게말해 짝짝이다. 고마워. 알고있다. 이것 또한 매력이 있다. 따분한 세상 평범한 건 재미없어. 뭐, 그런거지.  
둘째로 느린 걸음은 멋있다. 늘 사람이 북적이는 홍대의 몇번 출구. 많은 인파를 담은 굴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어딘가로 분주히 떠난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다리는 가벼워지고 걸음은 놀랍도록 빨라진다. 언젠가. 세상에서 제일 여유롭고 조용하게 느린 걸음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본 적 있다. 내 눈은 카메라 렌즈가 되었고, 블러처리된듯 수없이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다른 색깔로 반짝이는 누군가를 쉴 새 없이 담았다. 세상 만사 다 이겨낼 것처럼, 혹은 이겨낸 것 처럼, 우수에 가득 차 깊은 생각에 골똘히 잠긴 것처럼, 혹은 이 순간 아무생각따위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당당했다. 멋있고 아름다웠다. 나도 저런 걸음을 갖고 싶고 닮고 싶었다. 

*

난 이 날 누구보다 근사한 걸음으로 할머니를 무사히 고물상까지 바래다 주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왼쪽으로 보이는 창문으로 비가 우두두 쏟아졌다. 그녀는 비를 맞고 불편한 걸음으로 수레에 의지한채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물상에서 받은 몇가지 물건들로 수레는 가득차 있을 것이고, 그 수레는 할머니의 훌륭한 다리가 되어 줄것이다. 누구나 삶이라는 긴 끈에 잠깐 매달려 있다 떨어진다. 곡선이든 직선이든, 끊어버리지 않는 한 누구나 선위에 존재한다. 2차원 세계에서 점은 일부분일 뿐이고, 높이도 존재하는 3차원 세계에서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수없이 엉키고 설킨 여럿의 선 위에서 점으로 만난다. 세상에 점을 많이 찍고 싶어졌다. 그 뿐이다. 뭐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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