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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감.

간단한 짐을 꾸리고 산으로 향한다. 그는 흙길, 풀과 나무, 새와 저수지가 있는 풍경을 사랑한다. 산에 오르면 어떤 현실도 발 아래에 있다. 따스한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와 그의 바지를 펄럭인다. 중턱에 오르기 전 감나무 몇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그랬듯 곶감을 만들기 위해 주황빛이 돌지만 아직 초록의 기운이 남아있는 몇개의 감을 따서 가방에 넣는다. 산에 오를때마다 곶감을 만들 감을 따서 가방에 담다보니 나뭇가지 위에 두개의 감만 남았다. 무르익어 짙은 포크레인 색이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다. 다섯살 생일이 다가오자 그는 선물을 사러 장난감가게에 갔다. 배가 좋을까 포크레인이 좋을까 고민하다 포크레인을 골랐다. 선물을 받은 아들은 장난감을 너무나도 아꼈고, 포크레인이라면 자다가 깰만큼 조그마한 주황색 그것에 푹 빠져있었다. 아들의 웃음가득한 행복에 포크레인을 보여주러 공사장을 찾아다녔고 아들은 그때마다 꺄르르 웃곤했다. 

장난감을 받고 1달 후에 교통사고가 났다. 목숨을 앗아갈 만큼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다리에 금이 갔다. 차도 건너편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은 평소와 달리 할머니 손을 놓고 길을 건너고 싶었고 그 바램은 트럭에 다리가 밟히면서 무산됐다. 얼마전까지 장난감에 행복해하는 아들이 병상에 누워있게 되자 포크레인이 싫어졌다. 아들 방의 포크레인을 치우고 독한 술을 마셨다. 유약한 몸을 가졌지만 아내의 극진한 간호로 금방 걸을 수 있게 돼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들은 그 후로 포크레인은 찾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이 구름을 재촉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는 여러갈래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포크레인색 감 두개가 그의 눈에 다시금 맺힌다. 만약 그 때 배를 선물했다면 아들은 다른 이유로 아팠을까ㅡ 슥삭슥삭 생각을 지운다. 포크레인색 감은 아직 저기에 열려있다. 문득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의 주황색 감이 혹시 병원에 있는 아들은 아닐까ㅡ

그동안 강압적인 양육방식으로 아들을 저 차갑고 날선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건 아닐까. 미처 따지 못한 감. 두다리를 다 내어주고 모든걸 희생해도 아깝지 않을 아들이지만 그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그저 매일 학교를 데려다 주거나 용돈을 주는 것처럼 아들이 필요한 것을 준비해주는 게 표현의 전부다. 건설적이지 않은 고민을 꺼내거나 투정을 할때 내색하며 차단했고, 아내에게 딱붙어 울고있을 때 남자답지 못하다고 화를 냈다. 어쩌면 아들에게 정말 필요한건 그가 준비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아들에게 한 감정표현이라고는 화나 짜증이 전부였으니까. 그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나뭇가지 사이에서 뜨겁게 익어갔을 아들을 생각한다. 눈물이 나뭇가지와 하늘의 경계를 허물고 하늘빛 샘에 주황빛이 섞이지만 금방 증발한다.

단벌신사의 익숙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덤덤하게 전화를 받은 아들에게  퇴원전에 장애진단을 위한 소견서와 진단서를 가져오란 말을 전했고 아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몇마디 딱딱하고 차가운 대화에도 사랑이 들어있다. 아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산을 내려오기 전에 다시금 나뭇가지를 올려다 본다. 흔들리는 바람에 감이 흔들거린다.

언젠가 떨어질 저 감은 곶감이 될 수도, 
스스로 타올라 홍시가 될 수도 있다. 
감은 여전히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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