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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여자.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이 무색할만큼 상황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꽤 건강을 되찾았고 정신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기가 돌아 무언가를 쓰거나 몸을 가눌 욕구가 생겼다. 지금 써내려갈 이야기는 다소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둬야할 지는 명확히 모르지만 중요한 건 이 경험이 여러모로 내게 영향을 끼쳤고 지금 내 삶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늘상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인생을 날조한 이야기꾼으로만 한정시켰고, 나는 나대로 몸과 정신을 꽁꽁 싸매고 하루하루를 지냈지만, 이 경험이 활자화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궁극적으로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남긴다.


작년 11월에 여수에서 일어난 일이다. 상경해 서울생활을 하면 문득 고향생각에 한동안 사무칠 때가 있다. 그때는 정신없이 허겁지겁 짐을 꾸린다.. 극적인 고향방문을 위해 내가 서울에 존재했던 것 처럼 여수로 가는 발걸음에는 한치도 무거운 적이 없었다. 늘 즐거웠고 활기가 돌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터미널의 색다른 사람들과, 여러대의 버스, 귀성객들을 호객하는 상점들 어떠한 것도 죽어있는 건 없었다. 어쩌면 버스를 타러가기 까지의 정경과, 버스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보기위해 고향을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수를 가려고 8번 플랫폼에 짐을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고, 거기서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흘러나온다. 이동진 평론가는 김중혁 작가와 함께 커트보니거트의 제 5도살장을 소개하고 작가와 책 줄거리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끌벅적한 주변이 고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희한하게도 앉아있는 내앞에 누군가가 서서 실컷 떠들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빼고는 조용히 그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귀, 귀, 귀걸이를 빼세요, , , 귀걸이 때문에 그 쪽 새끼손가락이 자꾸 떨, 떨, 떨, 떨리는 거에요. 귀걸이를 빼세요, 귀걸이를 빼세요,,” ‘밤이라 그런가 정신 이상한 여자가 꼬이네, 승차시간도 얼마 안남았는데. 이상한 일에 휘말리기 싫어’ 다시 이어폰 한쪽을 귀에 꼽고 커트보니거트의 에세이에 대한 김중혁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이상한 여자의 문장한개가 내 두귀를 파고들어 내 뇌리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어차피 니가 지금 내려가봐야 수중에 있는 300만원은 결국 2주일만에 써버리고 말거고, 스물 다섯 정도면 이렇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귀를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마냥 닭살이 솟구쳤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다시 빼서 그 사람 말에 시선을 옮겼다. 그 사람이 내가 듣고있는 걸 눈치챘는지 안챘는지는 알수 없다. 그저 이상하리만치 내 몸상태와 자금상황, 나이를 맞춘 그녀에게 정신이 쏠린 상태였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어봤자 그쪽에게 하등 도움도 안되요. 당신같은 사람들을 여럿알아요. 당신은 이곳에 머물면 안되요. 나랑같이 인천 송도로 가야되요. 그 곳에는 당신같은 사람들을 모아둔 호텔이 있어요.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면 되는거에요. 겁낼 것 없어요. 이건 정해진 운명같은 거고 나는 그쪽을 데리러 온거에요.” 나는 당시 SNS를 하지 않았다. 내 생활의 면면을 굳이 내쪽에서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기에 내 개인정보가 어딘가에서 유출되어 봤자 생일과 통장자금까지 알 리 없다. 안다고 해도 지금 내 동선에 있다니. 이미 그녀는 처음에 아무소리를 아무에게나 지껄이는 여자에서,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있나 궁금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당신은 끄더런비아 행성에서 왔어요. 나는 알 수있어요. 당신에게는 무한한 감수성과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만한 막강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이 별 사람들만의 특징이에요. 당신같은 사람이 인천 송도에 많이 있어요. 분명 만나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볼거에요. 나를 믿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그 따위 선동을 하지않아도 나는 그녀에게 충분한 궁금증이 생겼고 정신을 차렸을땐 뭔가 도깨비불에 홀린 듯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캐묻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가닥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하행 버스를 타기 까지는 15분 여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간은 버스에 오르기 전 마지막 담배한개피를 음미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간의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못들은 척 흡연장으로 갔다. 흡연장 공기는 냉랭했으며, 주변에 사람도 없는 까닭에 무한 분위기 속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였다. 그 의문의 여자가 울기 시작한건. “아니 내말좀 들어봐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거에요. 그쪽이 내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 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아무의미가 없는게 되버려요.” 떼를 쓰기 시작했다.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내몸을 다시한번 휘감았고 나는 도저히 그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서둘러 담배를 끄고 하행버스 플랫폼으로 몸을 옮겼다. 그 여자는 집요하리만치 나를 설득하려 애썼고 내 가방끈을 거세게 붙잡았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8번플랫폼 담당자였다. 몇 안되는 주변사람들은 내가 이 여자에게 큰 잘못을 한 것마냥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고 나는 이 상황이 괴로웠다. 나에게 고향에 가는 길은 늘 여유롭고 행복했다. 나를 반 이상 아는 것 같은 이상한 여자에게 옴짝달짝 못하고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까부터 이상한 여자때문에 버스에 탑승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아니 다 큰 여자가 야심한 시간에 무슨짓입니까?” “아는 사이십니까?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왜 청년을 괴롭힙니까?” “어차피, 어차피,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거에요. 어차피 어차피, 우리는 다시만나게 될거에요. 날 까먹진 않을거에요. 날 까먹진 않을거에요. 지금 이순간을 후회하진 않겠지만 언젠가 다시 나를 만날거에요.” 그여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끔 이런 이상하고 기묘한 일들이 내 주위에 펼쳐진다.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이 것도 그 중하나 일거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자체도 내가 그 여자의 몇마디에 이미 사로잡혀버렸다는 거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고속터미널에 있고, 그때를 회상한다. 여운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어울릴 지 모르지만 여운 비슷한게, 그 날의 생생한 정경이 기억 어딘가에 남아있다. 물론 지금도 믿지 않지만, 만약에 내가 끄더런비아 행성에서 온 사람이 맞다면, 그 여자를 따라 내 고향 행성 사람들을 만났다면, 유년기부터 따라다녔던 우울과 고독이 설명이 될까? 그들을 만난다면 텅빈 가슴이 벅차오를만큼 채워져 불행따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까? 올해의 큰 사고도, 지금도, 앞으로도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힐 고통도 없지 않았을까?  


여자의 광기어린 울음과, 마지막 말을 미루어보면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치고 날 어떤행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데려가려고 할 지 모른다. 낯선사람이 다른 얼굴과 다른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거봐요. 우리 또 이렇게 만나잖아요. 이제는 나와 갈 수 있겠죠?”라고 묻는다면 전처럼 휙하고 돌아설 수 없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명확하고 맞아떨어지는 일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다. 온갖 미스테리와 이상하고 기묘한 일들로 가득차 있다. 그 날에 귀를 통해 제5도살장의 조각난 단면이 흘러들어왔지만 지금은 제5도살장 곳곳의 정경이 내 머릿속에 속속들이 박혀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책에서 튀어나온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일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볼 수 있는 트랄파마도어 행성인. 내가 어떤 행성에서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고, 앞으로 어떻게 내 인생이 결말이 날지 꿰뚫고 있는 트랄파마도어 행성인. 책에 대한 추천까지도 독서의 일부이다. 책속의 세계 문 반대편에서 건너온 트랄파마도어 행성인.  


다시금 그 여자를 만난다면 따라갈지 안 따라갈지 대답해 줄 수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 날의 분위기를, 그 날까지의 내 인생을, 내 주변에 누가 남았는지를 종합해서 그 날의 내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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