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얼음의신님의 이글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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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문에서.


나는 지금 신이문의 대로 앞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달리는 차들 위로 달이 보입니다. 적당히 기울었는지 제법 따뜻합니다. 대로 아래 전철을 타러 가는 엄마와 아들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엄마 손을 꽉 잡고 가는 것처럼 보이네요. 왜소하지만 섬세해 보이는 아이입니다. 한참 뒤 엄마 골치 좀 썩히겠군요. 괜찮습니다. 저런 아이가 세상을 바꾼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방금 전 수영장 앞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따끈따끈한 이야기인 겁니다. 나는 한시간 앞선 시간에 수영장에 도착했습니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하루키 산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내 시선이 고양이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부분을 좇을 때, 고양이 한마리가 내 무릎에 머리를 문지르고 지나가는 겁니다. 이런 우연이라니! 카메라를 안 꺼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어플을 켜 고양이를 찍으려는데, 그제야 얼룩덜룩한 고양이의 털이 내가 문지르는 액정위에 담기는 겁니다. 안경을 썼다면 미리 알았을텐데 말입니다.
 
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연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오늘 또 죄책감 한개를 목욕가방에 담아 수영장에 간겁니다. 후회는 왜 어릴적 밀물에 쓸려간 낚시대처럼 느껴질까요? 난 역시 차들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대로에 앉아 알량한 글자에 감정을 담습니다. 우연에 대한 글을 쓰려했는데, 죄책감에 대한 글이 되어 버렸네요. 글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쌀쌀해, 일어서야 겠습니다. 쪼금 찌질한 나는 언제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또렷이 보며 걸을 수 있을까요.

별과 거리.

그리 시리진 않은 새벽입니다.

휴지통을 뒤집어 엎은 듯 텅텅한 거리.
한 손에 며칠 입을 옷이 담긴 캐리어를 쥐어
거리에 나왔습니다.

얼룩진 지상위로
아스러운 빛을 뿜는 가로등을 지나
거꾸로 올려다본 하늘.

먼지에 자리를 내주었던 별들이
이번엔 해에게 내주려
서둘러 반짝입니다.

먼지는 별에게
해는 별에게
얼었던 손바닥에
쉼을 건네는

내린 버스에 큰 소리로 감사하는
아이같은 새벽.
오늘도 하늘이 그리웁니다.


첫 자위.

나는 지금부터 써내려갈 이야기가 어떤 내용일지 모른다. 그저 생각이 뻗치는대로, 다만 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만한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곧 있을 주영이와의 만남 전에, 이 2시간을떼우기 위해 난 또 한번 얇다란 손가락을 놀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그게 좋겠다. 내 첫 자위에 대한 이야기. 다소 거북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 상황이 누구에게도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독자들이 읽고 분명 흥미를 가질 걸 알기에 이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아 내 첫 자위가 생각난다. 자위는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는 행위이다. 분명 그게 맞다. 게다가 첫자위를 누군가에 의탁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란 걸 알것이다. 누가 반박할 수 없는 진리와 가까운 사실이란 말이다. 하지만 내 첫 자위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첫 사정은 내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교 2학년 까지, 대부분의 주말을 아버지와 함께 보냈다. 동이 트면, 새벽에 일찍 일어난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있는 날 깨우고 차에 태웠다. 그런 아침이면 우린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는 고향 여기저기에 있는 목욕탕을 데리고 다녔다. 그렇기에 최근에 새로 생긴 곳들을 제외하고는 거즘 다 다녀봤을 것이다. 아버지는 친절하게도, 내가 갈 목욕탕을 고를 선택의 기회를 줬다. 물론 목욕탕을 선택하는 행위가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 선택은 목욕탕에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들을 줄이거나 막을 수는 없었다. 고작 가봤던 목욕탕 중에 물의 온도가 다른 곳보다 뜨거운 지, 무서운 아저씨들이 없는 곳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있기전까지는 말이다. 아 스물일곱. 고향을 멀리 떠나온 지금에야 그 날들을 떠올려보면 부자간의 따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아니었다.

우선 삼십분정도를 온탕에 들어간다. 잠깐 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난 당시 아무리 잠에 겨워도, 그놈의 탕에선 절대 잠들지 않았다. 탕이라는 단어가 고깝지 않아, 참 무서워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팔팔 끓는 매운탕, 꽃게탕, 삼계탕처럼 잠에 들면 인간탕이 되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도, 탕은 여전히 뜨겁고 괴롭다! 일단 탕에 나오면 미리 등을 제외한 자신의 몸 구석구석 때를 벗긴 아버지가 손짓한다. 물론 아버지가 손짓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난 수 많은 나체들 사이에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가정불화의 파편으로 아빠와 엄마가 어린 내게 당시 감당못할 눈치를 물려줬기에 알 수 있었다ㅡ물론 지금은 연애를 할때 빼고는 감사하게 생각한다ㅡ 게다가 난 뒷모습만으로 아버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난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럼 아버지가 돼지가 되더라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장담한다!  아버지 등에는 표식이 있다. 흡사 춘추전국시대 일본 사무라이에게나 있을법한, 큰 검에 베인 것으로 보이는 흉터가 있는 것이다. 당시 꿈에 종종 나를 괴롭히는 대상으로만, 위협적인 대상으로만 등장했던 아버지였기에 , 나는 어머니, 할머니 누구에게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금기처럼 느껴졌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골반위에 걸쳐진 그 칼자국이 이십대에 생긴, 수술로 인한 상처인 걸 알게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실제로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서는 최근, 가족이 터울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요즘에야 알게됐다. 두번째로는 아버지의 뒤통수다. 짧은머리 아버지의 뒤통수에는 살들이 정확히 세 곳에서만 겹치는 데, 그게 꼭  엽기토끼의 눈과 입처럼 생겼다. 요즘도 그렇다. 어릴 적 아버지 뒤통수를 보고, 몰래 피식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다. 눈 부분이 더 접혀, 나이 지긋한 엽기토끼 할아버지쯤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데워진 탕에 억지로 때를 불리고 나온 난  아버지가  근엄하게 앉아있는 곳으로 향한다.  다소 격양된 아버지의 벌개진 얼굴이 떠오른다. 내 손목을 잡고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두려운 초록 장갑으로 날 밀기 시작하면, 후 난 일주일 전부터 예정되었던 고통이 시작되어, 벽에 달린 시계의 분침을 돌려놓고 싶단 생각을 했다. 시계가 나와서 말인데, 그 것으로 목욕탕에서 내 고통을 표현하고 싶다. 실제로 당시 자주가던 목욕탕에 내가 했던 놀이다. 이제야 독자들에게 알린다. 학교 방학전에 흔히 작성하는 원에 선들이 가득한 스케줄표처럼 시계에 선을 나눈다. 12시부터 4시까지가 탕 속에 있을 대의 고통이라면, 때를 미는 고통은 4시부터 10시까지다. 탕에 나오면 은근히 뿌듯하기도 하고 상쾌한 느낌도 들어 느꼈던 고통은 금방 잊혔지만,. 2시간의 고통이 남았다. 그건 바로 손톱깍기 시간이다. 잠깐, 아 아버지의 고도로 집중하는 두 눈이 떠올라 글을 쓰기전까지 이로 물어뜯던 내 손톱을 쳐다봤다. 내 손톱이 무슨 보석이라도 된 냥,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골똘히 관찰하는 세공사가 된다. 아버지가 내 손톱을 자르고 나면 너무 매 깍아서 화요일까지 물건을 집을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면 우리의 목욕탕 시간은 끝나는 것이다. 자! 자위에 대한 부분까지 거즘 다왔다. 좀만 참아주길 바란다. 나는 거짓말 속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름없는 주말이었다. 버스정류장에 같은 시간에 멈추는 버스처럼 고통의 날이 다시 한번 찾아온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다름없는 주말이었지만, 그 날의 풍경이 기억난다. 엄마는 참치와 마요네즈가 들어간 김밥을 몇줄 싸고 있었고, 할머니는 마당 건너 슈퍼에서 이른시간 술손님들을 받고 있었으며, 동생은…. 음 이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 나는 평소와 다르게 일찍 눈이 깨어있었던 것 같다. 확실하지 않다. 나는 아버지의 두툼한 손에 이끌려, 목욕가방을 챙기고 아버지 차에 탔다. 당시 귀에 한참 옙이었던가, 하는 삼성mp3를 가지고 다녔는데, 한창 빠져듣던 음악이 있어 차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 노래가 뭐였더라. Kcm노래였던 것 같다. 역시 확실하지 않다. 아버지는 혼을 냈고, 내가 뾰루퉁해 있자 가운데에 있는 운전기어?(난 차에 대해 잘 모른다.)쪽에 손을 내밀어 평소 아버지가 차에타면 흔히 하던ㅡ아 언젠가부터 멈춘 이 아버지의 따뜻한 억양과 멜로디처럼 들리는 이 문장이 아직도 기억난다ㅡ “성규~ 손좀 잡아주~” 나는 아무 말 없이창밖을 보면서  아빠에게 손을 건넸다. 아버지의 손은, 내가 잡은 첫 남자의 손은 딱딱하고, 거칠었다.  지금은 미용실을 하는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하느라 갈라지고 부르튼 손이다. 엄마를 향한 작은 저항이라도 하겠다는 듯 고무장갑을 안 쓰기 때문이 아닐까. 무튼 우리는 고궁온천이라는 목욕탕으로 갔다.

우리는 몇 달 후 불에 타 없어지기 전까지, 고궁온천을 자주갔다. 최신시설이기도 했고, 카운터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이 것이 아버지가 자주 그 목욕탕에 간 이유일 수도 있겠다. 아주머니는 아들이 아빠 닮아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했다. 잘생긴 부자 또왔네! 이렇게 말이다. 당시 난 아버지가 잘생겼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웠지만, 목욕탕 아주머니의 말은 진심처럼 느껴졌다. 추석이나, 설날즈음이 되면, 아버지는 종종 선물꾸러미를 챙겨 내게 들게 하고는 집집마다, 상점마다 빠짐없이 돌며, 건물사람들에게 전해줬다ㅡ지금은 내 일이 됐다ㅡ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아들이 아빠를 닮아서 잘생겼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생각해보면 나는 명랑하게도 그저 선물을 받은 사람의 아버지의 기분을 좋게하기 위한 이냥저냥의 달콤한 말 쯤이었다는 말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해관계가 설키지 않은 아주머니의 말이 진심처럼 느껴졌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몇년 전 월세가 밀려, 건물을 떠났던 나를 좋아해주시는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이쯤되면 화가 나기도 한다는 거 알고있다. 사실 난 조금 뜸을 들이고 있다. 한시간정도가 남았기 때문이다. 아 그 놈의 매트리스! 고궁온천에 자주갔던 이유 중 한개는 때밀이 아저씨가 안 쓰는 동안만큼은 그 매트리스같은 곳에 누워 때를 벗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ㅡ물론 매트리스도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아버지는 등을 제외한 부분은 혼자 해결한다ㅡ

나는 매트리스에 누웠다. 아버지의 눈과 얼굴은 다소 격앙된 듯 벌게져있다. 아버지는 내가 들어가는 빨간색 다라니에 뜨거운 물을 퍼서 내게 찌그린 후 팔부터 밀기 시작했다.  매트리스에 누으면 일은 금방 끝나고, 아무래도 나는 누워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서, 고통에 대한 긴장감이 덜했던 것 같다.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고 있다. 아버지의 강한 힘이 어쩌면 지금 내 과거 기억에 있는 내 때를 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른 팔을 두번 문지른 후, 맨들맨들해졌다고 판단이 되면, 왼 팔을 두번 문지른다. 다라니에 풀을 퍼서 한바탕 찌그린다. 그렇게 그렇게. 그 다음은 목, 가슴, 배, 다리 순으로 문질렀다. 여러번의 뜨거운 물이 내 몸의 찌꺼기들을 세상밖으로 내보냈다.
“자 엎드리자.” 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엎드렸다. 등과 엉덩이 뒷다리만 문지르고 난다면, 역시 4시부터 10시까지의 고통이 끝나는 것이다. 나는 집에가서 참치마요네즈 김밥을 먹을 생각에, 먹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 축구를 하고, 오락실에 갈 생각에 이미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가 등을 밀기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아버지의 기진맥진한 손이 내 등을 문대기 시작하자 내 몸이 머리쪽에서 발쪽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이상했다. 나는 고통에 대한 생각따위 들지 않았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골을 넣었을 때, 선물로 mp3를 받았을 때, 좋은 음악을 들을 때, 좋아하는 여자애가 내게 말을 걸때와는 비슷하지만 등을 밀때 더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게 페니스와 미끄러운 매트리스와의 마찰에서 오는 쾌락의 일종이었다는 걸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데에 일종의 죄책감과 죄의식도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었다. 아무래도 괜찮았따.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인 만큼, 언제 다시 느낄지도 모르는 이 쾌락을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나는 잠깐동안 쾌락의 최첨단에 있었고, 그 때 무언가를 배출하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빠 나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다. 오히려 그때 그렇게 이야기 했으면, 더 나았을까. 등을 끝낸 아버지는 다라니에 물을 퍼서 내 등에 찌끄렸다. 얼마간환희에 쪄진 느낌이 때와 같이 증발하는 기분이었고, 목욕탕이 무너지면 어쩌지하는 희안한 울적함이 밀려왔던 것 같다. 확실하지 않다. 다리를 문질렀다. 다시한번 다리에 물이 찌끄려지고, 나는 언제나처럼 냉수쪽으로 갔다. 뒤에서 아버지의 킁킁거리는 소리와 매트리스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다. 그 후로도 고궁온천을 몇번이나 더 갔지만ㅡ이제야 솔직하게 말한다. 느낌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그 곳에 몇번 더 들렸던 것이다ㅡ그런 기분은 두번다시 느낄 수 없었고, 얼마 후 고궁온천은 불에 타 없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몇년 후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이 무렵 흔히 하는 성교육을 받았고, 얼마 후에 자위를 했다. 목욕탕에서 처음 느꼈던 것 만큼의 짜릿함은 없었다. 이건 확실하다!

얼마 전에 설을 맞아 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왔다. 때밀이가 거친 몸짓으로 성인 남자의 등을 문지르고 있을때, 문득 어린 날의 생각이 매섭게 밀려왔다. 나는 탕에 목까지 담그고, 거울에 비친 앉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버지의 등에 지닌 흉터는 아버지가 때를 벗길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아버지는 당신 아들의 첫 짜릿함을 알고 있었을까. 거울 앞 아버지의 뒤통수 뒤로 엽기토끼가 비밀스럽게 웃고 있었다.

새벽 전봇대

저기 전봇대에
감정 몇개 매달았다.

칼에 잘 저민 무언가
날에 어찌 반사되듯,
나. 사라지고 싶다.

벼랑끝에 손 하나.
간신히 매달린 누군가
삶 내려놓을 때 느끼는 감상들.

그것들이 하루 대부분이 되고,
하고 싶었던 말로
너를 더 묶어두지 않아도 될 때,

나. 지상에서 소거되고 싶다.
반복적인 싸이월드 탈퇴.
끝없는 에스엔에스 비활성화.
폰을 건물 난관에 떨어뜨리는 상상.

삶의 종말은 모든 생각 끝에
황혼과 새벽사이를
비웃듯 대롱거린다.

기쁨과 슬픔.
낙차의 괴리.
그 사이 틈입하는 죄책감.
미처 여미지 못한
젖같은 수치심.

관두고 떠나고 싶다.
신경쓰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을 어딘가로.

거기 닿으면
나 죽어 살란다.


물고기의 우주

당신을 안으면,
당신을 안는다면.

추락하는 하늘이라도
침전하는 바닷속이라도
끝없는 무의 향연에라도
그저 
행복합니다.

아ㅡ
그대란 우주속에
삶과 죽음은 
티끌보다 봐줄게 없군요.

당신의 품안은,
그대의 숨결은.

큼지락한 우주요,
그 곳을 수놓는
은하수와도 같아서.

당신이 바다라면
난 물고기로 태어나

그대 안에서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해를 봐요.

아.

물고기의 우주에
바다가 없던 때가
한번이라도
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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