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얼음의신님의 이글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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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우주

당신을 안으면,
당신을 안는다면.

추락하는 하늘이라도
침전하는 바닷속이라도
끝없는 무의 향연에라도
그저 
행복합니다.

아ㅡ
그대란 우주속에
삶과 죽음은 
티끌보다 봐줄게 없군요.

당신의 품안은,
그대의 숨결은.

큼지락한 우주요,
그 곳을 수놓는
은하수와도 같아서.

당신이 바다라면
난 물고기로 태어나

그대 안에서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해를 봐요.

아.

물고기의 우주에
바다가 없던 때가
한번이라도
있었던가요.


수레할머니.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내뿜는 배기가스처럼 떠다녔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비를 피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실내에서 비 내리는 하늘은 아름답지만, 막상 밖에 나와 비를 맞게되면 아름다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찝찝함만 남는다. 카페로 가는 길에 구부정한 모습을 한 할머니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가벼워보이는 검정로퍼에 나풀거리는 검정바지에 검정 티셔츠, 근사한 에스닉 패턴의 빨간색 조끼를 입고 연보랏빛 수레를 끌고 있었다. 몽몽하게 흐린 하늘에 대비되는 색감이 내 시선을 기어이 빼앗고 말았고, 다가가려던 찰나에 그녀는 말을 걸었다.  


“학생, 고물상이 어딘지 아는감?” “고물상이요? 수레 주세요. 제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어요. 가까워요. 제가 끌어드릴게요.” 할머니는 수레를 자기 쪽으로 바짝 가까이 한 뒤 경계하듯 말을 이었다. “이건 내가 끌 수 있어. 학생이 앞장서면 내가 뒤따라갈라요.” 호의가 그녀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걸음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빠른 보폭으로 건물에 바짝붙어 걸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빗방울 속에서도 눈을 내 발에 의지해 걷고 있었다. 그녀의 보행자세로는 앞은 커녕 앞에 내 발밖에 못볼게 뻔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느린걸음을 봤다.  


그때 알았다. 왜 수레를 내게 맡기지 않았는지. 불안하고 느린 걸음이지만 그렇게나마 보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수레 때문이였다. 수레가 그녀의 또 하나의 다리였다. 수레로 몸의 중심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수레가 없었으면 몇 걸음도 못가 털썩 주저 앉았을 것이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레를 끌어드리는 게 전부였는데 그 것마저 못했고, 길잡이 밖에 못했다. 난 못 본체하고 다시 발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서서히. 내가 느리게 걷는 건 결코 배려가 아니다. 그녀가 내 느린걸음을 부추겼던 건 절대 아니다. 


첫째로는 내 다리가 불편해서였다. 올해 골반 골절로 하지로 내려가는 좌골신경에 손상이 왔다. 왼쪽 발가락은 위로 잘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 발가락은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신경손상이 발에 변형을 일으켰다. 걷는데 지장은 없다. 전처럼 축구는 못할 것도 알고있다. 손실이다. 축구는 나를 잃었다. 슬플 것이다. 쉽게말해 짝짝이다. 고마워. 알고있다. 이것 또한 매력이 있다. 따분한 세상 평범한 건 재미없어. 뭐, 그런거지.  
둘째로 느린 걸음은 멋있다. 늘 사람이 북적이는 홍대의 몇번 출구. 많은 인파를 담은 굴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어딘가로 분주히 떠난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다리는 가벼워지고 걸음은 놀랍도록 빨라진다. 언젠가. 세상에서 제일 여유롭고 조용하게 느린 걸음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본 적 있다. 내 눈은 카메라 렌즈가 되었고, 블러처리된듯 수없이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다른 색깔로 반짝이는 누군가를 쉴 새 없이 담았다. 세상 만사 다 이겨낼 것처럼, 혹은 이겨낸 것 처럼, 우수에 가득 차 깊은 생각에 골똘히 잠긴 것처럼, 혹은 이 순간 아무생각따위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당당했다. 멋있고 아름다웠다. 나도 저런 걸음을 갖고 싶고 닮고 싶었다. 

*

난 이 날 누구보다 근사한 걸음으로 할머니를 무사히 고물상까지 바래다 주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왼쪽으로 보이는 창문으로 비가 우두두 쏟아졌다. 그녀는 비를 맞고 불편한 걸음으로 수레에 의지한채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물상에서 받은 몇가지 물건들로 수레는 가득차 있을 것이고, 그 수레는 할머니의 훌륭한 다리가 되어 줄것이다. 누구나 삶이라는 긴 끈에 잠깐 매달려 있다 떨어진다. 곡선이든 직선이든, 끊어버리지 않는 한 누구나 선위에 존재한다. 2차원 세계에서 점은 일부분일 뿐이고, 높이도 존재하는 3차원 세계에서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수없이 엉키고 설킨 여럿의 선 위에서 점으로 만난다. 세상에 점을 많이 찍고 싶어졌다. 그 뿐이다. 뭐 그런거지. 

맨인더박스

상자를 건네받았어요.
조그맣고 까실까실한 상자에요.

실타래를 풀어 헤치고 싶지만
참아야겠지요.

안에는 상처밖에 없을테니까요.

이 뭉치를 빈 그릇 위에 고이 두고
찔러보고 두드리기도 하면
스스로 나와줄까요

평소처럼 외면하면
스스로 없어져줄까요

스쳐지나가 주지 않을까요
왜 내 앞에 멈춰설까요
순순히
고꾸라져주지 않을까요

노란 낙엽을 한개 주워와
어항에 상자와 함께 넣었어요.

가을에 서서 가을을 기다려요.


그의 감.

간단한 짐을 꾸리고 산으로 향한다. 그는 흙길, 풀과 나무, 새와 저수지가 있는 풍경을 사랑한다. 산에 오르면 어떤 현실도 발 아래에 있다. 따스한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와 그의 바지를 펄럭인다. 중턱에 오르기 전 감나무 몇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그랬듯 곶감을 만들기 위해 주황빛이 돌지만 아직 초록의 기운이 남아있는 몇개의 감을 따서 가방에 넣는다. 산에 오를때마다 곶감을 만들 감을 따서 가방에 담다보니 나뭇가지 위에 두개의 감만 남았다. 무르익어 짙은 포크레인 색이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다. 다섯살 생일이 다가오자 그는 선물을 사러 장난감가게에 갔다. 배가 좋을까 포크레인이 좋을까 고민하다 포크레인을 골랐다. 선물을 받은 아들은 장난감을 너무나도 아꼈고, 포크레인이라면 자다가 깰만큼 조그마한 주황색 그것에 푹 빠져있었다. 아들의 웃음가득한 행복에 포크레인을 보여주러 공사장을 찾아다녔고 아들은 그때마다 꺄르르 웃곤했다. 

장난감을 받고 1달 후에 교통사고가 났다. 목숨을 앗아갈 만큼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다리에 금이 갔다. 차도 건너편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은 평소와 달리 할머니 손을 놓고 길을 건너고 싶었고 그 바램은 트럭에 다리가 밟히면서 무산됐다. 얼마전까지 장난감에 행복해하는 아들이 병상에 누워있게 되자 포크레인이 싫어졌다. 아들 방의 포크레인을 치우고 독한 술을 마셨다. 유약한 몸을 가졌지만 아내의 극진한 간호로 금방 걸을 수 있게 돼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들은 그 후로 포크레인은 찾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이 구름을 재촉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는 여러갈래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포크레인색 감 두개가 그의 눈에 다시금 맺힌다. 만약 그 때 배를 선물했다면 아들은 다른 이유로 아팠을까ㅡ 슥삭슥삭 생각을 지운다. 포크레인색 감은 아직 저기에 열려있다. 문득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의 주황색 감이 혹시 병원에 있는 아들은 아닐까ㅡ

그동안 강압적인 양육방식으로 아들을 저 차갑고 날선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건 아닐까. 미처 따지 못한 감. 두다리를 다 내어주고 모든걸 희생해도 아깝지 않을 아들이지만 그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그저 매일 학교를 데려다 주거나 용돈을 주는 것처럼 아들이 필요한 것을 준비해주는 게 표현의 전부다. 건설적이지 않은 고민을 꺼내거나 투정을 할때 내색하며 차단했고, 아내에게 딱붙어 울고있을 때 남자답지 못하다고 화를 냈다. 어쩌면 아들에게 정말 필요한건 그가 준비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아들에게 한 감정표현이라고는 화나 짜증이 전부였으니까. 그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나뭇가지 사이에서 뜨겁게 익어갔을 아들을 생각한다. 눈물이 나뭇가지와 하늘의 경계를 허물고 하늘빛 샘에 주황빛이 섞이지만 금방 증발한다.

단벌신사의 익숙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덤덤하게 전화를 받은 아들에게  퇴원전에 장애진단을 위한 소견서와 진단서를 가져오란 말을 전했고 아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몇마디 딱딱하고 차가운 대화에도 사랑이 들어있다. 아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산을 내려오기 전에 다시금 나뭇가지를 올려다 본다. 흔들리는 바람에 감이 흔들거린다.

언젠가 떨어질 저 감은 곶감이 될 수도, 
스스로 타올라 홍시가 될 수도 있다. 
감은 여전히 감이다.

버스에서 만난 여자.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이 무색할만큼 상황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꽤 건강을 되찾았고 정신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기가 돌아 무언가를 쓰거나 몸을 가눌 욕구가 생겼다. 지금 써내려갈 이야기는 다소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둬야할 지는 명확히 모르지만 중요한 건 이 경험이 여러모로 내게 영향을 끼쳤고 지금 내 삶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늘상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인생을 날조한 이야기꾼으로만 한정시켰고, 나는 나대로 몸과 정신을 꽁꽁 싸매고 하루하루를 지냈지만, 이 경험이 활자화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궁극적으로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남긴다.


작년 11월에 여수에서 일어난 일이다. 상경해 서울생활을 하면 문득 고향생각에 한동안 사무칠 때가 있다. 그때는 정신없이 허겁지겁 짐을 꾸린다.. 극적인 고향방문을 위해 내가 서울에 존재했던 것 처럼 여수로 가는 발걸음에는 한치도 무거운 적이 없었다. 늘 즐거웠고 활기가 돌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터미널의 색다른 사람들과, 여러대의 버스, 귀성객들을 호객하는 상점들 어떠한 것도 죽어있는 건 없었다. 어쩌면 버스를 타러가기 까지의 정경과, 버스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보기위해 고향을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수를 가려고 8번 플랫폼에 짐을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고, 거기서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흘러나온다. 이동진 평론가는 김중혁 작가와 함께 커트보니거트의 제 5도살장을 소개하고 작가와 책 줄거리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끌벅적한 주변이 고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희한하게도 앉아있는 내앞에 누군가가 서서 실컷 떠들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빼고는 조용히 그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귀, 귀, 귀걸이를 빼세요, , , 귀걸이 때문에 그 쪽 새끼손가락이 자꾸 떨, 떨, 떨, 떨리는 거에요. 귀걸이를 빼세요, 귀걸이를 빼세요,,” ‘밤이라 그런가 정신 이상한 여자가 꼬이네, 승차시간도 얼마 안남았는데. 이상한 일에 휘말리기 싫어’ 다시 이어폰 한쪽을 귀에 꼽고 커트보니거트의 에세이에 대한 김중혁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이상한 여자의 문장한개가 내 두귀를 파고들어 내 뇌리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어차피 니가 지금 내려가봐야 수중에 있는 300만원은 결국 2주일만에 써버리고 말거고, 스물 다섯 정도면 이렇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귀를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마냥 닭살이 솟구쳤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다시 빼서 그 사람 말에 시선을 옮겼다. 그 사람이 내가 듣고있는 걸 눈치챘는지 안챘는지는 알수 없다. 그저 이상하리만치 내 몸상태와 자금상황, 나이를 맞춘 그녀에게 정신이 쏠린 상태였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어봤자 그쪽에게 하등 도움도 안되요. 당신같은 사람들을 여럿알아요. 당신은 이곳에 머물면 안되요. 나랑같이 인천 송도로 가야되요. 그 곳에는 당신같은 사람들을 모아둔 호텔이 있어요.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면 되는거에요. 겁낼 것 없어요. 이건 정해진 운명같은 거고 나는 그쪽을 데리러 온거에요.” 나는 당시 SNS를 하지 않았다. 내 생활의 면면을 굳이 내쪽에서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기에 내 개인정보가 어딘가에서 유출되어 봤자 생일과 통장자금까지 알 리 없다. 안다고 해도 지금 내 동선에 있다니. 이미 그녀는 처음에 아무소리를 아무에게나 지껄이는 여자에서,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있나 궁금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당신은 끄더런비아 행성에서 왔어요. 나는 알 수있어요. 당신에게는 무한한 감수성과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만한 막강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이 별 사람들만의 특징이에요. 당신같은 사람이 인천 송도에 많이 있어요. 분명 만나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볼거에요. 나를 믿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그 따위 선동을 하지않아도 나는 그녀에게 충분한 궁금증이 생겼고 정신을 차렸을땐 뭔가 도깨비불에 홀린 듯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캐묻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좋을지 가닥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하행 버스를 타기 까지는 15분 여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간은 버스에 오르기 전 마지막 담배한개피를 음미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간의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못들은 척 흡연장으로 갔다. 흡연장 공기는 냉랭했으며, 주변에 사람도 없는 까닭에 무한 분위기 속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였다. 그 의문의 여자가 울기 시작한건. “아니 내말좀 들어봐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거에요. 그쪽이 내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 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아무의미가 없는게 되버려요.” 떼를 쓰기 시작했다.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내몸을 다시한번 휘감았고 나는 도저히 그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서둘러 담배를 끄고 하행버스 플랫폼으로 몸을 옮겼다. 그 여자는 집요하리만치 나를 설득하려 애썼고 내 가방끈을 거세게 붙잡았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8번플랫폼 담당자였다. 몇 안되는 주변사람들은 내가 이 여자에게 큰 잘못을 한 것마냥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고 나는 이 상황이 괴로웠다. 나에게 고향에 가는 길은 늘 여유롭고 행복했다. 나를 반 이상 아는 것 같은 이상한 여자에게 옴짝달짝 못하고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까부터 이상한 여자때문에 버스에 탑승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아니 다 큰 여자가 야심한 시간에 무슨짓입니까?” “아는 사이십니까?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왜 청년을 괴롭힙니까?” “어차피, 어차피,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거에요. 어차피 어차피, 우리는 다시만나게 될거에요. 날 까먹진 않을거에요. 날 까먹진 않을거에요. 지금 이순간을 후회하진 않겠지만 언젠가 다시 나를 만날거에요.” 그여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끔 이런 이상하고 기묘한 일들이 내 주위에 펼쳐진다.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이 것도 그 중하나 일거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자체도 내가 그 여자의 몇마디에 이미 사로잡혀버렸다는 거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고속터미널에 있고, 그때를 회상한다. 여운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어울릴 지 모르지만 여운 비슷한게, 그 날의 생생한 정경이 기억 어딘가에 남아있다. 물론 지금도 믿지 않지만, 만약에 내가 끄더런비아 행성에서 온 사람이 맞다면, 그 여자를 따라 내 고향 행성 사람들을 만났다면, 유년기부터 따라다녔던 우울과 고독이 설명이 될까? 그들을 만난다면 텅빈 가슴이 벅차오를만큼 채워져 불행따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까? 올해의 큰 사고도, 지금도, 앞으로도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힐 고통도 없지 않았을까?  


여자의 광기어린 울음과, 마지막 말을 미루어보면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치고 날 어떤행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데려가려고 할 지 모른다. 낯선사람이 다른 얼굴과 다른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거봐요. 우리 또 이렇게 만나잖아요. 이제는 나와 갈 수 있겠죠?”라고 묻는다면 전처럼 휙하고 돌아설 수 없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명확하고 맞아떨어지는 일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다. 온갖 미스테리와 이상하고 기묘한 일들로 가득차 있다. 그 날에 귀를 통해 제5도살장의 조각난 단면이 흘러들어왔지만 지금은 제5도살장 곳곳의 정경이 내 머릿속에 속속들이 박혀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책에서 튀어나온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일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볼 수 있는 트랄파마도어 행성인. 내가 어떤 행성에서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고, 앞으로 어떻게 내 인생이 결말이 날지 꿰뚫고 있는 트랄파마도어 행성인. 책에 대한 추천까지도 독서의 일부이다. 책속의 세계 문 반대편에서 건너온 트랄파마도어 행성인.  


다시금 그 여자를 만난다면 따라갈지 안 따라갈지 대답해 줄 수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 날의 분위기를, 그 날까지의 내 인생을, 내 주변에 누가 남았는지를 종합해서 그 날의 내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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